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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의 복제와 나르시시즘
김남이 (미학자)

발달심리학자들에 따르면, 아이가 말을 배우고 자신에 대한 사고(思考)를 시작하면서 하는 최초의 질문은 ‘나는 어떻게 세상에 왔을까?’이다. 자기 기원에 대한 궁리를 멈추지 않는 아이의 집요한 질문은 아이의 평생을 지배할 것이다. 어른에게도 그것은 풀 수 없는 질문이니까. 그리고 이런 집요하고 강박적인 질문은 신화와 종교의 기원이기도 하다. 다리 밑에서 주워오건, 황새가 물어오건, 자기 기원에 대한 신화가 없는 문화권은 없다. 신화는 집단의 허구적 기원이지만 우리는 이를 피할 수 없다. 사고와 시간은 닮아 있어서 우리는 시간이 존재하는 만큼만 사고한다. 기억이라는 형태로. 그러므로 우리 사고의 시작이 바로 우리 생의 시작이다–생식세포의 결합과 분열이 생의 시작이 아니다. 그리고 그 최초의 사고-기억이 머무는 곳, 그곳이 신화의 터이다. 그러나 그 기억은 기원적 근거이면서도 거짓이니, 사실상 실존적 역설이 아닐 수 없다. 존재하지도 않는 기원이라는 거짓이 우리를 돌보고 살게 하니까. 그럼에도 내가 온 곳이자 다시 돌아갈 곳에 관한 신화는 생의 이유를 알지 못하는 인간의 불안을 완화하고 껴안을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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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를 위한 제의, 2025 스틸컷

장연호 작가의 작품은 이 기원에 관한 거짓말들이다. 제주도 불도맞이굿의 굿놀이인 악심꽃꺾기는 아이를 점지하고 보호하는 삼승할망에게 아이의 무병을 빌며 악운을 쫓는 의례이다. 이 굿놀이를 재연하는 「부재를 위한 제의」에서 작가는 댓잎을 정성스레 꺾어 다발을 만들고 108개의 잎을 하나씩 꺾으면서, 본풀이처럼 기원을 구송한다. 다만 작가는 아이의 무병을 기원하는 것이 아니라, 부재하는 기원을 애도한다. 기원-없음이라는 부재 자체를 기원으로 다시 새겨넣는다. 삼승할망이 점지해줄 혈육은 부재로서 환생한다. 그리고 그 자리를 다른 이들의 자리로 남겨놓는다. 혈육 대신에 사랑하는 이, 곁에 있는 이, 죽어가는 이의 자리,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의 자리. 부재하는 공간은 자기를 돌보고 기르는 시간, 나르시시즘적 기억-최초의 시간으로 변한다. 자신에게로 회귀하는, 자신의 기원-없음을 탐구하는 수행의 상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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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진 아이들의 정원, 2025 

AI generated image, archival pigment print, variable dimensions

불도맞이굿은 아이가 가난이나 질병 때문에 열다섯이 되기도 전에 죽으면 다시 좋은 곳에서 환생할 수 있도록 기원하는 굿이다. 이 굿을 하면 죽은 아이는 서천꽃밭을 찾아가 생불꽃에 물을 주며 다음 생을 기다린다. 「사라진 아이들의 정원」은 서천꽃밭의–이승에는 부재하는-꽃들의 정원을 시각화한다. AI로 시각화된 꽃들은 부재를 가리고 기쁨과 슬픔으로 색칠하는 베일이다. 전시된 꽃의 사진들은 분할되어 한쪽에는 흑백의 꽃들, 다른 한쪽에는 총천연색의 꽃들의 대비가 강조된다. 『신학대전』에서 토마스 아퀴나스는 천국을 신의 공간으로 묘사했지만, 그 공간은 사실 매우 그로테스크하다. 인간만이 겪는 정념(기쁨이나 슬픔)이 신에게는 없기 때문에 천국은 오히려 기쁨도 슬픔도 없이 무감(無感)한 무채색의 공간으로 상상된다. 천국에 꽃이 있다면 바로 저 모노톤의 꽃들이지 않을까. 반면, 서천꽃밭은 아이들의 슬픔과 바람이 가득한 공간이다. 여전히 저승이 아니라 이승을 갈구하며 슬픔과 치유와 바람이 다양하게 채색되어 있는, 정념으로 가득한 공간이다. 작가가 상상하듯이 정원의 아이들은 이승에서 겪은 것만큼 힘들게 꽃들을 돌보고 있다. AI가 무한하게 생산한 증식하는 아이들과 꽃처럼, 증식하는 작가의 정념들이 형상화된다. 작가는 아이의 생과 죽음을 주시하며 여성과 식물의 생식기인 꽃과 재생산의 복잡한 매듭들을 다시 묶는다.

40 Forty 불혹, 2024 스틸컷

‘아이라는 존재의 불안과 매혹,’ ‘증식하는 나’라는 테마는 작가의 이전 전시에서도 일관적으로 나타났던 모티프라고 할 수 있다. 엄마에 대한 기억을 그리는 작업(엄마, 2014)뿐만 아니라 타인의 폭력적 시선을 이야기할 때도(Empty Gaze, 2018) 증식하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 전면에 내세워지고, 자신과 매우 유사한 존재인 여동생이 아이를 안고 있는 작품(Lullaby, 2021), 자신의 동년배들에 관한 이야기(40, Forty, 불혹, 2025)에서도 완전한 자기복제는 아니더라도 유사-자아들에 대해 탐구한다. 아이라는 자기-복제에 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Wonder Womb Clinic」은 출산이라는 재생산과 자기-복제의 차이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암시하며, 다른 형태의 재생산에 대한 작가의 욕망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약간의 유머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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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Womb Clinic, 2025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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