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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연호의 바카날리아

​[2026 옆집예술가 용인_ 비평 매칭 프로그램]
김현주 (독립큐레이터)

 

장연호는 춤출 수 있는 사람이다. 홀로 또 여럿이 춤을 춘다. 그녀는 바쿠스 신(Bacchus, 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 Dionysos)을 기리는 광란의 축제 바카날리아(Bacchanalia)를 떠올린다. 거장 티치아노도, 푸생도, 루벤스도 그린 축제가 바카날리아다. 이 축제에 대해 그녀는 “여자들이 숲에서 술을 마시고 춤을 미친 듯이 춘 축제”[1]라고 표현한다. “너무 인상 깊어서 이미지들을 찾아봤더니 모닥불을 펴놓고 거기서 막 다 춤을 추고 남편 머리 잘라서 들고 있는 이런 이야기”라고 말이다. 찾아보니 바카날리아는 신분과 성별 구별 없이 누구나 참여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그녀의 기억 속 가장 극적인 장면이 어쩌면 저 표현으로 농축됐을지 모른다. 물론 축제 본연의 의미와 이미지적 기억이 혼융된 것일 수 있다. 남편 머리 이야기는 과열일 수도 있으니 춤으로, 춤으로 돌아가자. 내게 춤은 곧 장연호의 연대기적 포트폴리오를 살펴보며 또 시기별 제작된 영상을 열람하며 도출된 수렴점으로 다가온다. 작품의 외양에서 몇 가지 범주가 분산돼 있음에도 말이다. 장연호는 내게 바로 이 춤의 역동성. 무아지경 광란의 상태. 그때 생기는 설명하기 어려운 에너지의 교합에 매료된 자로 비친다. 이런 춤판과 굿판은 한판에 펼쳐지곤 한다(고 그녀에게 들었다). 그녀는 제주도 무형문화유산 칠머리당영등굿을 기록하기 위해 카메라 뒤에 섰지만 덩달아 달뜨게 만드는 춤과 굿에 대해 몸소 경험한 이다. 근작에 해당하는 〈우리에게 이름〉(2024)은 제주 칠머리당영등굿에 대해 국가유산청 국가유산진흥원 후원으로 제작된 작품이고 〈부재를 위한 제의〉(2025)가 이로부터 파생됐다.

 

[1] 2026년 9월 4일 장연호와의 인터뷰에서 발췌했다. 이하 별도의 각주 처리 없이 큰따옴표로 처리된 부분은 장연호와의 인터뷰에서 옮겨온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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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추는 춤(Bacchanalia) , 2024 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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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 이름, 2024 

《기억의 형이상학》 2025, 전시전경 팔복예술공장, 전주

3채널 영상 〈우리에게 이름〉은 칠머리당영등굿 심방(제주도 지역 무당을 가리키는 용어)과 전승 교육생 7인의 인터뷰, 제주 풍경, 굿을 둘러싼 광경을 교차한다. 이 다큐멘터리는 개인 서사와 그 서사와 얽힌 당대 제주 심방에 대한 먼 옛날과 오늘 사이 인식의 변천, 멀찍이 놓고 마는 굿이 세속적 공간에 상당히 가까이 자리하고 있음을 증거 하는 기록을 담는다. 인터뷰는 인물들의 감정의 파고가 드러나는 고저는 거의 거둬들이고 이들을 비교적 사회적 상식선 영역에서 한 사람으로 전한다. 편집본 밖에는 그 파고가 남아 있을지 모르나 서글픔과 고통의 지대를 더듬는 구술이 이어진다 하더라도 일정 선을 웃돌지 않는다. 영등 할망과 제주 일만팔천 신을 기리는 굿과 육지 굿 사이의 차이를 담담하게 가려내고 제주 굿의 무악기(연물), 핵심 무구(멩두), 종이 무구(기메), 그리고 제물과 의례 도구를 자연스럽게 병치한다. 칠머리당영등굿 보존회장 이용옥 전승 교육사는 굿에 희망, 슬픔, 기쁨, 인생 그 모든 것이 있다 하였다. 그리고 영상의 말미는 굿판이 그러하듯 춤판으로 이어진다. 〈부재를 위한 제의〉는 인물의 서사와 굿판에서 초점을 좁혀 제주도 무당굿 불도맞이의 악심꽃꺾기를 2채널로 나누어 좌측은 108장의 대나무 잎으로 엮어 만드는 악심꽃을 제작 과정의 순으로, 우측은 심방의 문장을 굿판의 언어라기보다 담담히 내뱉는 잠언처럼 구성한다. 임신, 출산, 자궁, 가족, 아이, 혈육, 불임과 같은 생의 매듭을 둘러싼 문구는 종종 기대를 빗겨나기에 유의미하다. “축제는 아이를 낳는 사람만의 것이 아니다”[2]라고, “선택은 책임을 낳고 그 책임은 춤출 수도 있다”[3]는 메세지가 장연호가 현재 품고 있는 질문으로부터 혹은 그 질문을 향해 동심원을 그린다.

 

[2] 장연호, 〈부재를 위한 제의〉, 2025, 2-channel video installation, color, sound, 10’ 10’‘. 영상 자막에서 인용했다.

[3] Ib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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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재를 위한 제의, 2025 

앞서 언급한 〈우리에게 이름〉과 〈부재를 위한 제의〉가 〈40 Forty 불혹〉(2025)과 더불어 장연호의 근작을 이룬다면 〈혼자 추는 춤〉(2024)은 독일 유학 시절 작품부터 특징적인 크로마키 촬영 기술의 연장으로 제작됐다. “크로마키 기술이 더는 신기하지 않은 시대 그리고 A.I.의 피로도가 높아진 시대”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복제 증식하며 ‘어우러지는’ 양상은 기법으로, 또 주제를 강화시키는 조형 방법으로 드러났다. 예컨대 〈엄마 Mama〉(2014)에서는 엄마를 부르는 군집 무리 사이 크기의 차이가 있을 뿐 동일한 인물이 점점 기울어져 가는 장면이 연출됐고, 〈저녁 8시 um 20 Uhr〉(2014)에는 이 시간을 기점으로 모여앉는 가족에 자신을 하나하나 대입했다. 〈방향 Richtung〉(2015)에서는 어딘가 향해야 하는 선택의 발걸음 모두에 자신의 다리를 이입하며,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The rose of sharon has bloomed〉(2018)는 놀이의 술래와 참여자 모두에 자처한 처지를 표현했다. 혼자 놀기의 양상은 급기야 몸에서 표정이 가신 얼굴을 중심으로 탑을 쌓아가며 외로움과 공허함을 증식시킨 〈페르소나 Persona〉(2018)를 거쳐 〈Empty Gaze〉(2018)에서 무서운 장면을 연출한다. 장연호 여럿이 같은 지점을 바라볼 때 장연호 하나나 둘은 다른 시선을 취한다. 시선의 끝이 무엇에 닿아 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이유가 있든 없든 응시가 지닌 그 칼날 같음을 직관적으로 전달한다. 초기작에 해당하는 〈사라지다 verschwinden〉(2013)에서 마른 세수하듯 손이 닿는 얼굴의 부위가 지워지는 장면이 〈Empty Gaze〉 응시가 닿는 곳에서 원환(圓環)을 이루는 듯이 느껴진다고 할까. 이렇게 이어진 원환의 한 지점에 〈혼자 추는 춤〉이 자리한다. 바카날리아와 제주 굿판이 포개어져 장연호의 춤으로, 홀로 또 여럿이 추는 춤으로 전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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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pty Gaze, 2018 스틸컷

40 Forty 불혹, 2024 스틸컷

장연호의 작품들은 이처럼 조금, 아니 많이 무섭다. ‘남편 머리 잘라서 들고 있는 이런 이야기’의 단면 같기도 하다. 그런 연유에서 앞서 언급한 원환을 다시 끊어버리고야 말겠다. ‘어우러지는’ 그녀의 봉합은 의도적으로 불연속을 매끄러워 보이게끔 이끈다. 자연스러운 삶의 순리라는 허위의식을 답습하고 있지 않다. 사실 어우러짐은 허울일 뿐이다. 〈40 Forty 불혹〉을 예로 들어보자. 생애 주기는 있다. 남성 여성 모두 있다. 여성 생애 주기가 호르몬 변화에 따라 더 명확하다 전해진다. 남/녀 갈라치기 아니라 다룰 수 있는 영역 설정의 문제다. 〈40 Forty 불혹〉은 여성 생애 주기에 근거한다. 이 작품은 학창시절을 함께 보낸 6명의 고등학교 동창들을 담는다. 마침 이 작품 옆에 고등학생 장연호가 미래가 어떨지 알지 못한 채 친구들의 꿈에 대해 스케치한 〈꿈은 이루어진다〉(2003)를 볼 수 있었다.[4] 이 십여 년의 시간을 넘어 그때 그 얼굴들이 몇몇 담긴 〈40 Forty 불혹〉을 보니 정말 꿈이 이루어진 듯하다. 허나 ‘그것은 꿈이었을까.’ [5]꿈은 희망과 찬란한 동의어를 이루지 않는다. 불혹의 양감과 질감은 형언하기 어렵다. 온도와 습도도 그러하다. 그래서 6명의, 6채널로 불혹을 다룬다. 할 수 있다면 더 다채널이 될 수도 있을 테다. 여성 생애 주기는 특정 의식(ceremony)를 기점으로 삼기 어렵다. 초경, 결혼, 출산, 육아, 폐경 등의 주기에서 결혼식 정도가 식을 의미하는 정도이고 그 밖의 주기는 시작점 혹은 끝점과 맞물리며 생각보다 긴 시간 축을 경과한다. 마침 작가가 불혹이라 〈40 Forty 불혹〉을 다루지만 점점 뚜렷하게 다가오면서도 정체를 파악하기 어려운 게 생애 주기일지 모른다. 지나고 나면 알겠지만 배움은 그렇게 마디져 있지 않다. 주기는 파동을 그리며 거듭 오기 때문이다. 그마저도 기대를 배신하는 국면으로 온다.

 

[4] 《Biowatch: Untimely Meditation》 1부 백선주 & 2부 장연호, 2026년 8월 31일~9월 5일, 성동문화재단 소월전시실(서울). 기획: 김주현.

[5] 오래전 읽은 은희경의 소설 제목이다. 은희경, 『그것은 꿈이었을까』, 문학동네,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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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nder Womb Clinic, 2025 스틸컷

〈Wonder Womb Clinic〉(2025)은 바로 이런, 기대를 저버리며 오는 배신을 마치 홈쇼핑 상업광고의 형태로 A.I.를 동원하여 제작됐다. 무수한 상투어들은 일상에서 무심코 접해오던 광고와 크게 다르지 않다. 치고 들어오는 무반성적 언어들이 빠른 속도로 사안에 대한 이해나 의문, 비판을 뒷전으로 미뤄두도록 이끈다. 그런데 A.I.피로도를 역으로 활용한 거침없는 이 작품에서 그녀는 가상 출산 체험 패키지임에도 불구하고 시뮬레이션 과정에서 대리 경험은 “출산 직후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에서 뭉클한 느낌”을 동반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유학 시기 제작한 〈108배 다이어트〉(2015)와 더불어 일면 이질적인 영상의 결임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작동되는 작법은 세태를 짚으면서도 옳고 그름에 기울지 않고 거듭 쌓이는 의문을 현란한 봉합 뒤로 고의성 짙게 밀쳐버린다. 사안에 대한 의문이나 회의는 5분이라는 영상 구동 시간과 동시간성을 띠며 함께하기 어렵다. 무엇이 지나 갔을까. 그건 생애 주기의 단면이었을까. 장연호에 장연호를 덧대어가는데 이것이 심화 되면 장연호로 귀결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낯설어진다. 장연호의 반복은 장연호의 강화 아닌 분화된 정서로 다가온다. 크로마키 기법으로 자신을 덧대어가던 작법은 기법 이상의 의미로 분화했다. 더불어 이제는 굳이 자신 아니더라도 실마리를 얻었다. 이미 가족이 〈자장가 Lullaby〉(2021-2022)에 초대됐고 고등학교 친구들과, 칠머리당영등굿 전수관에서 만난 이들이 그러하고 또 현재 작업 중인 작품에서도 환대를 예비한다.

 

그녀는 향후 몇 년간 여성 생애 주기와 관련된 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현재 평택 기지촌 여성과 구술사의 일환으로 작업을 계획하고 있는데 그 방식은 사건의 시간 축을 근저에 둔 방식에서 벗어나기를 꾀한다. 피해자 서사 아닌 입체감을 담고 싶다 하였다. 초상 사진을 고민하기도 하며 노래하는 장면을 담을까 생각 중이라고 한다. “목소리가 주는 힘과 얼굴이 주는 힘” 어디쯤 놓일 작품에서 그녀만의 ‘어우러짐’이 궁금해진다. 필시 그 어우러짐은 기대에 반하겠지만 말이다. 유령화 시대를 진단하는 도미닉 페트먼은 고스팅(ghosting)이라는 관습은 전염성이 있다고, 무책임이라는 전염병의 기저에는 집단성이라는 감각이 거의 다 사라졌다는 집단적 인식이 자리한다고 일갈한다.[6] 페트먼의 고스팅에 대한 통찰은 가족, 친구, 연인의 사라짐에서 출발하지만 동시대 조건에서 기인한 유령화 징후에 대해 눈 밝은 이는 언제나 필요하다. 누군가를 필요에 따라 사라지게 만드는 집단의 인식을 들춰내는 이가 소중하다. 일전에 나는 장연호의 〈마지막 밤〉(2015)을 보고서 ‘다정한 것이 무섭다’고 메모를 남겼다. “어느 날 자신이 죽는다면 그 역시 자신의 죽음을 스스로 보내야 한다”[7]는 생각에서 비롯된 이 작품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사람과 사라진 자리에 골고루 시선을 나눠주며”[8] 적적함과 고립에 스스로를 가두지 않았다. 나는 말할 수 있다. 장연호의 자기 지시성은 닫힌 원환 아닌, 자기 지시성을 파괴하기 위한 동세라고 말이다. 그래. 그래서 춤으로 돌아가자. 춤추기 녹녹치 않은 세상에서 그녀의 바카날리아가 탄압 없이 지속된다면 좋겠다.

 

[6] 도미닉 페트먼, 『고스팅』, 최리외 옮김, 동녘, 2026, pp. 146-150.

[7] 장연호의 포트폴리오에서 인용했다.

[8] Ibid.

글 김현주 (독립 큐레이터)

 

김현주는 예술의 선물과 증여 가치를 탐구하며, 스스로를 ‘폐업큐레이터’로 정체화한다. 사회적 쟁점과 소수자의 문제에 예술로 개입하고, 정주보다 유목적 활동을 지향하며 전시를 기획하고 글을 쓴다.

고려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에서 석사, 고려대학교 영상 문화학협동과정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기획전으로는 《폭풍의 곶》(2022), 《너는 나를》 (2022), 《틸틸미틸》(2021), 《옆집에 사는 예술가, 김포》(2019), 세월호 참사 5주기 추념전 《바다는 가라앉지 않는다》(2019, 공동기획), 《꽃샘, 열기》(2018), 백남기 농민 1주기 추념전 《밀물》(2017, 공동기획), 《open-den(ed)》(2016), 《동백꽃 밀푀유》(2016, 공동기획) 등이 있다.

작품의 모든 저작권은 작가에게 있으며 작품 내용과 자료의 무단 도용 및 상업적 이용을 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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